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이렉트 액션 데이 (문단 편집) == 폭동 == 그리고 운명의 8월 16일. 아침부터 심상치 않은 소식들이 들려왔다. 힌두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캘커타 북부에서 사람들이 돌과 벽돌 등을 던지는 등의 소요사태가 일어난다는 보고가 경찰 본부에 들려왔다. 한편 이슬람 측에서는 정오기도를 마친 후, 오후 2시경부터 캘커타의 유명한 샤히드 미나르에서 중앙 정보국(힌두교) 추산 3만 명, 캘커타 특별 부지사(이슬람교) 추산 50만명이[* 이슬람 측의 추산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고, 한 무슬림 기자가 추산한 10만명 정도를 정설로 본다.] 운집해서 가두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힌두교도 측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는 무슬림을 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대다수 무슬림들은 대나무 등으로 무장을 한 채 집회에 참가했다. 그리고 집회가 끝난 직후, 상당수의 무슬림 참가자들이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에게 습격당하고, 무슬림들 역시 힌두교인들을 공격했고, 이를 들은 캘커타의 힌두교도들이 대대적으로 무슬림들을 습격하기 시작하면서 폭동이 시작되었다. 주 정부는 부랴부랴 오후 6시부터 야간통금을 실시했으나 사태는 잦아들지 않았고, 다음날인 8월 17일, 가든 리치 섬유 조합의 총재인 압둘라 파루크와 무슬림 훌리건 단체인 Elian Mistry가 무슬림 폭동을 주도해 케소람 방적 공장을 습격해 수백 명의 힌두교 노동자들을 학살하고 공장을 약탈하는 등 폭동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그리고 서벵골에 거주하던 수많은 무슬림들은 동벵골로 도피했고, 이는 무슬림이 대다수였던 동벵골의 반 힌두교 폭동의 씨앗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